개혁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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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저널=정이신목사] 개혁의 정석 » 전주성 지음/ 출판사: 매일경제신문사 »
교육ㆍ인구ㆍ노동ㆍ연금ㆍ조세ㆍ정부개혁의 성공 공식
그동안의 개혁 논쟁을 보면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제도 개혁’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줄 ‘재원 확보’다. 실현 가능한 개혁 플랜은 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구조 개혁으로 인한 손실에 대한 보상, 갈등의 정치적 타협을 위한 재원, 행동 유인을 바꾸기 위한 예산 지원 등 앞서 언급한 4대개혁에 소요되는 예산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략> 가뜩이나 재정 압박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 재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다. – [책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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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개혁’은 그려진 것이 하나도 없는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닙니다. 혁명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기에, 그려진 것이 없을 때는 다른 걸 모방하거나 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생각하는 것을 그려내면 됩니다. 이와 달리 개혁은 뭔가 있는 것을 바꾸려는 움직임입니다. 일정한 이익을 제공하지만, 효용성이 떨어진 기존 제도나 관행을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이 개혁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교육ㆍ인구ㆍ노동ㆍ연금ㆍ조세ㆍ정부 개혁’ 여섯 부문을 다뤘습니다. 이것이 서로 다른 영역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 부문의 개혁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정부에서 나서서 이 부문의 개혁을 시도했을 때, 반대하는 적은 ‘기득권의 고착화’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 못지않게 개혁을 저해하는 ‘사고의 고착화’가 개혁을 반대합니다. 저자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구호가 하나 가득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개혁의 중요 쟁점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저들의 구성은 정치인, 관료, 전문가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이는 사회 곳곳에 개혁을 겉으로만 외칠 뿐 실제로는 반대하는 사람이 널리 포진해 있다는 뜻입니다. 또 저들이 가진 ‘사고의 고착화란 무형의 세력’은 일반인들이 가진 상식보다 아주 비합리적입니다. 그런데 저들 사고의 고착화가 비합리적인 만큼, 저것이 개혁을 가로막아서 방해하는 강도는 꽤 셉니다.
따라서 개혁이 ‘효과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유지됐던 제도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시간을 투자해도 외국어가 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거나, 외국에 나가 한두 해 살아보는 것이 ‘공부방법의 개혁’이란 해법이 됩니다.
이렇게 결단을 내리고 실력 향상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시도하려고 하면, 저자의 말처럼 ‘피보다 진하다는 돈’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가,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고 필요조건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과감하게 외국으로 나가 어학을 공부하려면, 기존에 들었던 비용에 비해 더 많은 재원이 소모됩니다. ‘개혁을 위해 필요한 재원’이 계산서를 들고, 공부방법을 개혁하려는 사람에게 그 비용을 청구하러 옵니다. 따라서 ‘해당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란 현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개혁은 허구입니다.
저자가 쓴 책에 나온 뼈아픈 성찰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생생한 귀감(龜鑑)입니다. 저자는 대학 시절 현실 경제와 동떨어진 이론만 배웠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현실 경제는 협소한 시장을 가진 개발도상국의 상황이었는데, 저자는 대학교의 강의실에서 선진국 경험에 기반한, 미국의 경험을 토대로 한 총수요 관리 정책을 주로 배웠습니다.
‘One-size-fits-all’은 경제발전 문제에 정형화된 해답을 제공하는 국제기구의 공식인데, 저자는 대학교에서 현장과 괴리된 이론을 배웠던 슬픈 경험 때문에 이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IMF의 자문을 착실하게 따른 인도나 남미의 국가들에 비해, 나름대로 주체적인 발전 전략을 시도한 한국과 중국의 성장 성과가 뛰어난 이유를 되묻습니다. 그러면서 나라마다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고유의 특성이 있으니, 그걸 찾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저자와 그의 동료들이 원하는 것이, 우리 고유의 제도적,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 경제와 사회 발전에 필요한 이론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성장하는 기적을 일궈냈지만, 그 배경에 어떤 비결이 숨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우리와 같은 방법을 선택했지만, 우리나라만 유별나게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대한민국이 특별하다면, 왜 특별한지 더 구체적인 분석과 합당한 설명을 찾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선거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정권을 잡은 세력이나 정치인은 늘 여론의 향배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론이 한 번 등을 돌리면 정권을 잃거나 의회에서 소수당으로 밀려나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국민정서법’은 헌법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법입니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이 법에 걸리면 혹독한 대가를 치릅니다. 그런데 온 국민이 심판자인 이 법은 판결이 변화무쌍합니다. 그래서 한쪽으로 표가 몰려들거나, 각자의 처지에 따라 편이 갈리는 때가 많습니다.
국민정서법을 상대로 기개를 펼치며, 일반 시민을 설득해야 하는 개혁은 구조적인 제도 변화를 수반하기에 미래 지향적인 정책이고, 정책의 시계도 매우 깁니다. 그래서 국민정서법을 발동하는 일반 시민이 이 과정을 따라잡기가 매우 힘듭니다. 현실에서는 다음 선거가 다가와 국민 정서를 신경 써야 하고, 개혁 정책의 시계는 퇴임 후까지 고려해야 하는 압박이 아주 거셉니다.
이때 정치인은 대부분 개혁을 자기 임기 안에 매듭짓겠다고 욕심을 부리다가 흐지부지하거나 기존 방식과 적당히 타협합니다. 아니면 내용물은 쏙 뺀 채 겉으로만 개혁인 것처럼 흉내 내면서, 다음 선거를 대비합니다. 그러면서 다음 선거가 시작되면 ‘국민이 원하지 않아서, 새로운 개혁을 준비하기 위해서 예전에 주장했던 것을 포기했다’라고 하면서, 예전과 달리 엉터리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이런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 이념을 초월한 개혁 청사진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독일의 개혁 사례는 본보기입니다. 서독과 동독의 통일 후유증으로 독일은 한때 ‘유럽의 병자’란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때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워 유럽의 절대 강국으로 나설 수 있게 한 건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총리였습니다. 그는 정권을 잃을 각오로 인기가 없었던 독일의 개혁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후임으로 정권을 쟁취한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가 그의 개혁안을 그대로 수용하며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이 소속한 정당은 같을까요? 이것을 찾아내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독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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