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ed to S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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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저널=민경수 목사] “United to Serve”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_시편 133:1
필자가 25년/사반세기를 살아온 Southwark/서더크 주는 1086년 둠스 데이 책에는 스드웨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위치에 알맞게 런던시(the old city of London)의 탬즈 강남에 위치해서인지 이름의 의미는 “남쪽의 방어 작업(work)”을 의미하며, 고대 영어로는 강변 남쪽에서 weorc(작업) 유래가 되었으며 오랜 전통의 런던 브릿지의 남쪽 끝에서부터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15세기부터의 서더크(Southwark)는 여관가로, 극장들로, 스파라 표현되는 공중목욕탕, 시골풍 놀만한 곳, 그리고 다른 오락으로는 곰싸움시키기 및 더 남쪽으로 내려 가면 닭싸움 시키기 종류의 돈 따먹기 식 놀이 장소로 알려졌으며, 따라서 빈부의 격차도 아주 심했으며,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지역이 과연 런던의 원초적인 죄의 소굴인 양 다양한 모습의 생활상 놀이터들발견할 수도 있다. 있다. 그러므로 그 당시는 골든 스테이트 청교도 도성으로 표현된 구 런던시보다는 더 가난하고 황폐한 지역으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지난 일백여 년 또 오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집권당인 보수당은 이 지역을 차지하지 못하며 야당인 노동당, 자유 민주당이 이 지역을 지금까지도 독차지하는 풍조이며 하지만 시대의 발전과 함께 지리적 위치로 런던 도심 중에서도 중앙에 접근하기에 쉬운 지역이기에 약 25년여 전부터 발전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가까운 거리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 샤아드 타워가 우뚝 서 있는 런던 브릿지 가까이로부터 또한 본인이 오래도록 사는 이곳 그레이트 써폭스 거리의 한 모퉁이에는 왕가의 써폭스 궁전도 예전에 자리 잡고 있었던 흔적을 볼 수도 있다.
우린 영어의 표현인 돌팔매 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는 돌 하나를 집어서 남쪽으로 던지면 맞게 될 만한 거리에는 옛 설교자의 황태자라고 부르던 스퍼젼 목사님이 사역하던 ‘Met-Tab’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지역을 명하여 ‘엘리펀트 앤 캐슬’로 영국 런던의 교통망에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남 런던 곧 한국식의 표현인 강남의 “피카딜리 서커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물론 이곳의 역사는 그 유명한 자들 여럿이 있지만 마이클 페러데이는 1791년도에 뉴잉턴이란 이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탁월하게도 근본주의적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어려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지만 실용주의자라 칭함을 받은 그는 전자기학과 전기화학 분야에 크게 기여한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이다. 전기자기의 빛을 발견한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 그의 인생 여정은 살펴볼 만한 분이다.
필자는 이곳 런던 브릿지 바로 옆에 위치한 써더크 성당(큰 교회/ 교구의 마더 교회로 통칭함)에서 주간 채플린 사역을 한지가 올해로 12년의 해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그곳의 성공회 대교회의 사역에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해를 거듭하며 지금은 오직 주의 은혜중에 너끈히 주의 성 사역에 동참을 할수가 있어서 감사를 드린다. 소위 말하는 이 잉글랜드 교회는 한국적 표현으로는 성공회 교회이다. 이는 아시듯이 이곳 교단에는 국가의 정치에도 참여하며 상대하는 주교들이 있어서 저들은 국회 의사당의 멤버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교단 적으로는 역사 속으로 파묻힌 더 많은 이야기를 여기에서 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들의 중심 사역의 신학적 교리는 분명히 개혁교회로의 성향에서 출발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를 토대하여 그 유산으로는 옥스 브릿지 대학에 명명되는 틴데일, 니콜라스 위들리, 라티메어, 크렌머 및 존 위클립의 대학들이 아직도 교단의 신학교로 부름을 받은 신학도들의 선지 동산으로 역할을 꾸준히 잘하고 있는 모습에 영국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곳의 복음주의 개혁교회들의 사역자들이 함께하는 모임인 The Banner of Truth Ministers’ Conference는 초교파적인 모임으로 아직도 수명의 성공회 목회자들도 함께 참석하는 모습은 복음으로 동역하는 자들에게 ‘함께 섬긴다’는 그 아름다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형제여 기운을 내요 ~ 위로부터 오는 큰 힘을 얻어요” 하며 순교자로 불에 휩싸이면서까지 서로를 위로한…. to be continued ~~~
개혁의 삶이 깃든 교회가 필요합니다. 1547년 젊은 에드워드는 어린 나이 7살 때에 왕좌에 오르면서 당시에 가장 저명한 주교 중의 주교인교인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는 즉시 영국 국교를 확실히 개신교 교회로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1547년, 크랜머는 그의 “가정집”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성직자들이 개혁 교리를 강조하는 설교를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 이후 2년을 지키어 보던 크란머는 성도들의 필요성을 느끼며 보다 효과적인 예배를 위하여 1549년도 최초의 “일반 기도서”를 출판했는데, 이 책은 1552년 제2판에 의해 개정되었는데, 이것은 더 명확하게 프로테스탄트 개신교 적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진리의 말씀에 헐떡이는 크란머는 이듬해인 1553년도 잉글랜드/영국 교회를 개혁적이고 칼뱅주의적인 방향으로 더 확고히 많이 움직인 교리적인 진술로 말씀 중심의 42조를 제작했다. 이에 성직자들 및 성도들에게 큰 유익을 줌을 깨달은 만큼 크랜머는 이에 성경 학습으로 교과서적인 말씀들로 간추린 조항들은 최후에는 39조로 개정되었으며 이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는 저들의 신학적 대들보처럼 배우며 사역에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리하여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에는 전 세계 영국 교회의 공식 창립 성명이 되기도 하였었다. 대 주교의 토마스 크랜머의 엄청난 학식, 특히 교회의 권위와 노력으로, 그는 영국사에 나타난 종교 혁명을 지배했고, 이는 영국을 개혁된 신앙으로 이끌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주교 주교들의 역할은 각 지역에 위치한 그 수많은 교회당과 관계되는 건물들의 바른 보존 보호 등의 목적하에 성직자들은 목회에 있어서 바른 성경 신학, 컨페셔널 교회 사역 및 개혁 신학적 으뜸을 중시하며 사역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픕니다.
필자에게도 지난 12년 동안의 사역에서 중요한 여럿의 경험들이 있지만 여기에 한 예로 기록해 놓으렵니다. 몇 년 전 한 성직자의 은퇴 시 정직한 표현으로 말씀하시길. 이는 교회 재산 메네지먼트/관리적 사역을 중시하다 보니 지역 교우들에게도 목회적 돌봄보다는 계급주의적 교우들/페리션너들도 저렇게 메네지 하는 스타일의 목회요, 나아가서는 정치적 성향의 다 분단 모습들에 근거한 입술의 표현과 삶에서 보여줌은 분명코 성경적 연합으로 섬김이 아님을 밝히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성도들의 헌신된 기도들과 때로는 옛 순교자적 바른 자세로의 ‘말씀 지킴이’의 모습이 필요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현 시대적 한 부름은 크랜머, 위들리, 라티메어 및 위클립같은 개혁주의 사역자를 찾고 있습니다. 샬롬!
David Min @런던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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