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신화의 도시 볼로스 그리고 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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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저널=김수길 선교사] 영화와 신화의 도시 볼로스 그리고 필리오 » 그리스 이야기(25) »
볼로스(Βόλος)와 필리오(Πήλιο) 역사를 묻다…
나는 이 도시를 생각하면 영화가 생각나고, 신화가 떠오른다. 영화 속의 필리로 해변과 스키아토스 섬은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다. 뮤지컬 맘마미아와 60-70년대의 유명한 팝그룹 아바(Abba)의 펜들이 열광 했던, 스키아토스 섬은 이젠 공항이 들어서고 영화 속의 작은 교회에는 1년 이상 기다려서 금혼식 등을 치른다고 한다…

영화는 부둣가에서 시작한다. 맞은편에 있는 작은 섬 ‘스키아토스’ 로 가는 낡은 여객선을 타기 위해 남자 주인공들이 달리는 장면으로 뮤지컬 맘마미아는 시작한다.
나의 아내는 두 아들을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르쳤다. 시립음악원에서 여름 방학이면 항상 지방 연주여행을 다녀온다. 어느 날 큰아들이 “아빠 이곳에 꼭 한번 다녀오셔요” ‘어디?’ 생각 없이 답한 나에게 아들은 볼로스가 속한 필리로 산을 소개했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기억을 동창생 최 목사 내외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함께 갔었다. 빠가시띠꼬스(Παγασητικός)灣을 두 팔 벌려 안은 듯한 필리로산은 신화에서는 몸은 말이고 머리는 사람인 반수반인(半數伴人) 켄타우로스족의 땅 필리로 라고 지금까지 불러온다.
필리로 속으로 들어갔을 때 마치 내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서 산속의 이끼긴 길들을 걸었고, 돌로 만든 오래된 다리도 건넜다. 한 때는 많은 관광객을 실고 다녔을 협궤 열차의 철길을 걸으면서 사진도 찍었다. 아름다운 해변과 손에 잡힐 것 같은 섬과 섬을 보면서 영화감독이라면 이곳에 반할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 속으로 들어가면, 그리스인들이 좋아하는 신화 속 인물 중 한 사람은 이아손(Ἰάσων)이다. 이아손 (야손)은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한 아르고호의 원정대(Αργοναύτες)의 대장이었다.
이아손은 중부 테살리아의 대도시 이올코스의 왕이었던 아이손의 아들이었다. 아이손이 이복동생 펠리아스(Πελίας)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다. 아버지가 왕위에서 쫓겨나자 디오메데스(Διομήδης)라는 이름의 어린 아들은 켄타우로스족의 케이론에게 자라게 된다.
이 때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인 이아손으로 개명했다. 어른이 된 이아손은 누추한 노파를 만나 그녀를 업어서 강을 건너다가 한쪽 샌들을 잃는다. 이 일 덕분에 헤라 여신의 후원을 받게 된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영웅들을 괴롭히는 역할로 출연하는 헤라에게 후원을 받은 몇 안 되는 영웅이 된다.
한쪽 샌들만 신고 나타나 삼촌 펠리아스에게 왕위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이아손을 보고”한쪽 샌들만 신은 젊은이가 나타나 자신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신탁을 기억한 펠리아스는 이아손을 없애버리기 위해 동방의 콜키스(Κολχίδα 지금의 흑해변의 도시)로 가서 황금 양털을 구해오면 요구대로 왕위를 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이 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이야기다. 많은 책과 영화, 아이들 만화에도 나온 이야기이기에 생략한다.
신화 속의 이올코스 (Ιωλκός)는 오늘의 볼로스이다. 볼로스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바울사도 이야기도 없다. 볼로스라는 이름은 14세기 이후에 불러지게 되었다. 원래 이름인 이올코스 또는 데미트리아다(Δημητριάδας) 라고 부르지 않고 볼로스라는 이름을 부르는지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유가 궁금했다.

볼로스라는 이름의 시작은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자연스레 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가설 4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Volos라는 단어는 고대 이름인 Iolkos 가 Giolkos 또는 Golos 로 변형되어 부르다가 Volos 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은 Volos라는 이름이 신화에 따르면 부유한 지주였던 Folos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역사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야니스 코르다토스 (Γιάνης Κορδάτος)는 신문(Θετταλομαγνησια) 기고한 글에서 Volos라는 단어는 슬라브 신 Volos 에서 유래했고, 대지와 농업, 농경의 여신 데미테러(Δημήτηρ)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도시는 기원전 293년 마케도니아의 왕 데메트리오스 폴리오케테스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 지역을 이올코스 또는 데미트리아다 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마지막 설은 Volos라는 이름은 걸프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인 golfo가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분명한 것 지명 Volos가 14세기경에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필리오 기슭에 세워진 마을에 처음으로 불러졌으며 오늘날도 이 지역을 상(위쪽) 볼로스 (Ano Volos)라고 부른다.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볼로스의 역사
이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 기원전 4000년에서 1200년 사이의 유적들이 볼로스 서쪽의 데미니(Ντέμινι)에서 발굴되었다. 가장 오래된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하여 신석기시대의 정착마을들이 들이었다고 한다.
7세기경 슬라브족의 일파인 벨레게지(Μπελεγέζοι)족이 이 지역에 정착했다. 1333년 동로마 제국의 장군 요한 모노마코스(Γιόχαν Μονομάχος)에 의해 점령되기 까지 이들이 이곳의 주인이었다. 1348년 세르비아의 통치자 그레고리 프렐주브(Gregory Prelzuve)가 동로마 제국의 군대를 몰아냈다.1373년부터 20년 동안 다시 동로마 제국이 회복하였다.
볼로스는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전인 1423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반대세력인 베네치아공국의 공격에 대비해 도시를 요새화 했다. 수비대뿐만 아니라 아나톨리아에서 온 이슬람 정착민도 거주하게 했다. 기독교공동체들은 차례로 도시를 비우고 필리오의 산속으로 이주했다.
16세기 후반 들어 도시는 성벽 밖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가 점령하기도 했지만 1821년 5월, 그리스 독립운동이 시작될 때 까지 오스만 터키가 통치하고 있었다. 오스만 터키와 그리스 독립 운동가들이 수많은 전쟁을 치르다가, 볼로스는 1881년 11월 그리스 왕국에 합병되었다.
무스타파 케말 파사(Μουσταφά Κεμάλ Πασά)가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설립하자 그리스 터키 양국은 자국민 학살방지차원으로 수많은 인원을 주고받는다. 이 때 이오니아, 폰토스, 카파도키아, 동 트라키아에서 그리스계 난민들이 이곳으로 유입되어 오늘의 볼로스를 만들었다.
신화의 씨앗 속에서 자라난 도시이기에 영화가 나오고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지만 영화 속의 기억 때문에 아련한 추억의 도시로 자릴 잡은 것이다. 사실 아름다운 도시이다. 아름답기에 신화도 이해가 되는 곳이다.
아픈 침략의 역사를 품에 묻고 오늘 우리들에게는 추억과 그리움을 선물하는 가슴이 시릴 만큼 기억에 남는 영화와 신화의 도시 볼로스 그리고 필리오 – 꼭 가보시길 추천하고픈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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